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가덕도 남단에 위치한 아름답고 작은
갯마을인 외양포에는 일제 침략의 잔재인
일본군 포진지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1904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은 외양포에
대한해협 일대의 군사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민가 64호를 강제로 퇴거시키고 군사기지를
만들어 포병부대를 주둔시켰다고 한다.
일본군 포진지를 둘러보고 안내문들을
읽으면서 놀라운 사실은 1904년은 일제에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빼앗긴 1910년 경술
국치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일제가 민가를
쫓아내고 군사기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곳 변방의 외딴섬까지는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미치지 못했는지 혹은 위정자가
눈을 감고 덮어 둔 것인지, 아니면 나라에
힘이 모자라서 일본군이 자기들 마음대로
민가를 쫓아내고 포진지를 만들었는지...
강제로 쫓겨난 64호의 주민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광복 후 외양포로 다시
돌아왔는지? 안내문들을 자세히 읽어보니
광복 이후에 일본군이 물러나자 추첨으로
선정된 주민들이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일본군은 이곳 포진지에 엄폐 막사 2개소,
탄약고 3개소와 탄약고 사이에 2문씩 모두
6문의 280mm 유탄포를 설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외양포 포진지 주변의 산자락과
봉우리에는 산악 보루, 교통로, 관측소, 화약고
등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한다.
외양포 마을에는 일본군 막사, 우물, 창고 등
일본군 군사시설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외양포에서 북쪽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대항마을 대항새바지에는 일제가 연합군의
상륙 방어 목적으로 만든 벙커가 있다.
벙커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강원도에서
광부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뚫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덕도 곳곳에는 육군사용지
(陸軍使用地) 표석이 남아 있는데 이 표석은
대한민국 육군이 설치한 것이 아니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이 설치한 표석이다.
"치욕의 역사도 역사"라고 한다.
연대봉 산행에 앞서 일본군 포진지를
둘러보면서 치욕의 역사 현장도 잊지
말고 널리 알려야 한다고 느꼈다.
2021년 2월